무일푼에서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개척하고, 세계 시장을 뒤흔든 한국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셀트리온입니다. 창업자 서정진은 제약·의약과 거리가 먼 전자회사 출신이었지만, 남들이 주목하지 않던 바이오 시장에서 전혀 새로운 길을 열어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서정진 회장이 어떻게 불가능에 도전했는지, 셀트리온은 어떻게 세계 최초의 바이오 복제약 기업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사람 중심 이야기로 풀어보려 합니다.
IMF 실직자가 바이오에 도전한 이유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국내 대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던 시기, LG전자 미국 법인에 있던 서정진도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40세를 앞둔 그는 아무 연고도 없던 바이오 산업에 눈을 돌립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아무도 안 하니까 내가 해보자.”
그는 2002년 인천 송도에 ‘셀트리온’을 설립합니다. 당시만 해도 바이오시밀러라는 단어조차 생소했고, 국내에서는 바이오 제조 기반도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엔 해외 제약사들의 위탁생산(CMO)을 맡으려 했지만, 실적이 없던 스타트업에게 돌아오는 건 투자 거절과 냉소뿐이었습니다.
바이오시밀러, 아무도 몰랐던 시장을 파고들다
서정진은 ‘복제약의 바이오 버전’, 바이오시밀러에 집중합니다. 기존 바이오의약품은 수천억 원의 개발비와 긴 시간이 드는 반면, 복제약은 효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발 시간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기술적 난이도였죠.
셀트리온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특허가 끝나는 시점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에 맞춘 제품을 설계합니다. 가장 먼저 도전한 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의 복제약 ‘램시마’. 초기에는 임상 실패와 규제 장벽, 자금난까지 겹치며 수차례 좌절을 겪었지만, 끝내 해냈습니다. 2013년 유럽의약품청(EMA)에서 세계 최초 바이오시밀러 승인이라는 쾌거를 이룹니다.
기술과 사업을 동시에 쥐다
셀트리온은 단순히 기술력으로 승부하지 않았습니다. 제조, 유통, 판매까지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수익성과 효율을 동시에 잡았고, 글로벌 유통을 담당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를 별도 설립해 시장 확장을 꾀했습니다.
램시마에 이어 항암제 ‘트룩시마’, 유방암 치료제 ‘허쥬마’도 연이어 성공했고, 미국 FDA 승인을 받으며 세계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합니다. 셀트리온은 “국산 바이오로는 세계에서 안 통한다”는 편견을 깨뜨린 첫 기업이었습니다.
서정진 신화, 셀트리온의 지금과 미래
셀트리온은 한때 코스닥 시총 1위를 기록했고, 글로벌 CMO 1위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창업자인 서정진은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셀트리온은 여전히 그의 철학이 살아 있는 기업입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 해내는 것”이 셀트리온의 전략이었죠.
최근에는 코로나19 항체 치료제 개발, mRNA 백신 플랫폼, 항암 신약, 유전자 치료제 등 미래 바이오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으며, 미국·중동 등에서 글로벌 생산기지를 확대 중입니다. 단순한 복제약 제조사가 아니라, 신약도 만드는 종합 바이오기업으로의 전환이 진행 중입니다.
마무리
셀트리온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 대표적인 한국 기업입니다. 제약업에 무지했던 서정진 회장이 오직 전략과 실행력으로 세계 시장을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셀트리온의 창업 스토리는 벤처 역사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갖습니다.
무모했던 시작, 철저한 분석, 과감한 실행. 이 세 가지가 셀트리온을 만든 핵심입니다. 앞으로의 10년은 단순한 바이오 복제약이 아닌, 진짜 바이오 신약으로 글로벌 무대를 다시 한 번 흔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