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 한국 대중음악에 처음으로 ‘기획사 시스템’을 도입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SM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자 이수만입니다. 단순히 가수를 제작하는 것을 넘어, 연습생 시스템, 팬덤 전략, 해외 진출 모델까지 체계화한 그는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판을 바꿔놓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SM의 창업 배경, 아이돌 시스템의 탄생, 음악 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 그리고 미래 콘텐츠 전략까지 입체적으로 살펴봅니다.
가수 이수만, 기획자로 전환하다
이수만은 1980년대 한국 방송과 음악계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한 인기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가로 활동하면서 국내 대중음악 산업의 구조적 한계에 좌절감을 느꼈고, 미국 유학 중 MTV를 포함한 미국 음악 산업 시스템을 보며 새로운 비전을 품게 됩니다. “한국도 언젠가는 시스템을 갖춘 음악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 확신은 1995년, SM기획(현 SM엔터테인먼트)을 설립하며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집니다.
H.O.T.의 데뷔, 아이돌 산업의 기점
SM의 첫 정식 아이돌 그룹 H.O.T.는 1996년에 데뷔합니다. 당시 한국 음악계는 여전히 발라드와 트로트 중심의 무대가 대세였고, 10대를 타겟으로 한 기획형 댄스 그룹은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H.O.T.는 철저한 팀 콘셉트와 팬덤 전략, 의상 및 안무 등 모든 요소가 기획된 ‘시스템 아이돌’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들의 성공은 대중음악 시장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고, 연습생 → 데뷔 → 팬덤 형성 → 해외 확장이라는 사이클이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잡게 됩니다.
콘텐츠를 제조하는 시스템 기업
SM은 가수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기존 모델에서 탈피해, 음악·퍼포먼스·스타일·팬과의 소통까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설계·관리하는 방식을 구축했습니다. 연습생 선발 단계부터 철저한 트레이닝, 콘셉트 개발, 데뷔 플랜이 진행되고, 팬클럽 운영, 굿즈 제작, 방송 콘텐츠 유통까지 통합적 운영이 이뤄집니다.
이러한 기획형 시스템은 이후 JYP, YG, 빅히트 등 타 기획사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 ‘K-POP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음악 산업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SM은 단순한 연예기획사를 넘어선 콘텐츠 제작사로 진화하며, IP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수익 다변화를 실현해왔습니다.
글로벌 전략과 K-POP 확산의 선두주자
보아의 일본 진출은 SM의 글로벌 전략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됩니다. 당시 보아는 철저한 일본어 교육,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통해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했고, 이는 K-POP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입증한 상징적 사건으로 남습니다. 이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엑소, 레드벨벳, NCT, 에스파까지 다양한 세대의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며, SM은 아시아를 넘어 미주, 유럽 팬층까지 확보하게 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버추얼 캐릭터, 글로벌 오디션, K-POP 플랫폼 ‘DearU’ 등의 서비스를 통해 콘텐츠 수익화 채널을 확장 중이며, 팬덤 중심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SM엔터테인먼트는 ‘시장을 먼저 상상한 기업’이었습니다. 가수 출신 이수만 창업자가 만들어낸 연습생 시스템과 산업화된 음악 제작 방식은,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도 SM은 음악에 그치지 않고, 플랫폼, 메타버스, 인공지능, 글로벌 지식재산 비즈니스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POP의 산업화, 세계화, 플랫폼화 그 모든 시작점에 SM이 있었고, 그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