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Uber)는 단순한 차량 호출 앱을 넘어, 도시의 교통 문화 자체를 바꾼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겨울 파리에서 택시 한 대를 잡지 못한 경험이 오늘날 우버를 있게 한 계기가 되었죠. 이 글에서는 우버를 만든 두 사람, 트래비스 캘러닉과 게럿 캠프의 만남과 실행력, 그리고 우버가 성장하며 겪은 갈등과 진화의 흐름을 정리합니다.
우버 아이디어의 시작, 파리에서
게럿 캠프는 이전에 스타트업을 매각한 뒤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던 중이었습니다. 그가 친구와 함께 참석한 파리의 한 콘퍼런스에서 겪은 불편함이 바로 택시 문제였습니다. 앱을 통해 차량을 불러 이동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귀국 후 바로 프로토타입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캠프는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파트너로 트래비스 캘러닉을 선택합니다. 이미 창업 경험이 있는 그는 기술과 실행력 모두 갖춘 인물이었고,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블랙세단 호출 앱 ‘UberCab’을 시범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당초 목적은 간편하고 고급스러운 차량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앱 하나로 이동을 바꾼다
2010년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한 우버는, ‘스마트폰으로 차량을 호출한다’는 단순한 UX 덕분에 빠르게 주목받았습니다. 실시간 위치 확인, 예상 요금 안내, 간편 결제까지 당시로서는 생소한 기능이 사용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에는 ‘택시를 대체하겠다’는 전략보다, 기존 교통 서비스의 불편함을 줄이는 데 집중했습니다.
몇 달 사이에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미국 대도시로 퍼졌고, 서비스 이름도 Uber로 바꾸며 대중성 확보에 나섭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유럽, 아시아, 중동 등 해외 도시로 발을 넓히게 됩니다. 물론 각국의 택시 조합과의 마찰, 규제 이슈, 법적 충돌도 빠르게 뒤따랐습니다.
급성장의 그림자, 창업자의 퇴장
우버는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기업 내부에선 여러 갈등이 쌓였습니다. 트래비스 캘러닉의 공격적인 확장 전략은 외부에선 혁신으로, 내부에선 피로감으로 작용했습니다. 직원들과의 마찰,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 경영 투명성 문제는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결국 2017년, 캘러닉은 CEO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는 회사를 창업한 인물이었지만, 새로운 국면을 열기 위해 물러나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후 CEO 자리는 익스피디아 출신의 다라 코스로샤히가 맡게 되었고, 그는 조직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규제 대응, 서비스 다각화를 병행합니다.
모빌리티 플랫폼으로의 확장
우버는 차량 호출을 넘어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하며 새로운 수익 모델을 실험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버이츠(Uber Eats)’입니다. 음식 배달 플랫폼으로 시작한 이 서비스는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성장했고, 우버의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물류 영역에서는 화물 운송 플랫폼 ‘우버 프라이트’를 선보였고, 전기 자전거, 킥보드 공유 서비스도 실험하며 도시형 모빌리티 서비스 확대에 나섭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도 초기부터 투자해왔으며, 몇 차례 구조 조정을 거쳐 외부 협력사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조정했습니다.
마무리
우버의 창업 이야기는 화려한 아이디어보다 현실의 불편함에서 출발한 사례입니다. 게럿 캠프와 트래비스 캘러닉은 단순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했고, 그것이 거대한 산업 전환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갈등과 논란, 실패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버는 전 세계인의 이동 습관을 바꾼 대표 기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우버는 이동 그 이상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도시 내 지속가능한 교통, 기술 기반 물류, 에너지 절감 등 다양한 문제를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시작은, 단순한 ‘차 한 대를 부르고 싶다’는 바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