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디(Vivendi)는 현재 유럽을 대표하는 미디어 그룹으로 평가받지만, 시작은 전혀 다른 산업에 있었습니다. 1853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칙령으로 설립된 ‘Compagnie Générale des Eaux’는 파리 시민에게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한 공공 목적의 기업이었습니다. 이후 150년 동안 상하수도 관리, 폐수 처리 등 도시 인프라 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20세기 말부터 급격한 사업 재편을 통해 미디어 중심의 기업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황제의 명령에서 시작된 수도회사
나폴레옹 3세는 파리의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기업에게 수도 공급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도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에 따라 1853년, Compagnie Générale des Eaux(CGE)가 설립되며 본격적인 상수도 관리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실질적인 운영은 공공기술자들과 도시 행정가들이 주도했으며, CGE는 이후 프랑스 전역의 수도 인프라를 담당하는 주요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20세기 후반, 통신과 미디어로 확장
1980년대 후반, CGE는 통신 산업과 정보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케이블 TV, 라디오, 인터넷 네트워크 구축 등 새로운 영역에 투자하면서 전통적인 유틸리티 기업에서 탈피하고자 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방송과 음악 산업에도 손을 뻗으며 다각화 전략을 가속화했고, 1998년에는 기존의 수도 사업 부문을 별도 기업인 Veolia로 분사하면서 본사를 비방디(Vivendi)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시켰습니다.
음악과 게임, 글로벌 콘텐츠 제국으로
2000년대 초 비방디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 유료 방송사 Canal+ 등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탈바꿈합니다. 유니버설 뮤직은 세계 최대 음반사로 성장했고, 블리자드는 콜 오브 듀티,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인기 게임을 통해 비방디의 수익을 크게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다양한 미디어 자산을 통합하면서 비방디는 음악, 방송, 영화, 게임을 포괄하는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됩니다.
전략적 재편과 유럽 미디어 집중
2010년대 들어 비방디는 대대적인 사업 재정비에 나섭니다. 게임 부문 일부를 매각하고, 유니버설 뮤직의 지분을 점진적으로 처분하면서 수익을 실현하는 동시에, 유럽 중심의 유료 방송과 출판 산업에 집중합니다. Canal+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의 방송 플랫폼을 확대하고, 프랑스의 미디어 기업 라가르데르 인수를 통해 출판·뉴스·문화 콘텐츠 부문까지 아우르게 됩니다.
마무리
비방디는 공공 인프라 기업에서 글로벌 콘텐츠 그룹으로 변모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기업입니다. 프랑스 사회의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산업 전환을 거듭했고, 콘텐츠와 플랫폼을 결합한 구조로 유럽 미디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3세의 칙령으로 시작된 이 기업은 지금도 문화, 정보, 오락의 흐름을 움직이는 중요한 축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