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방위산업, 에너지, 화학, 금융, 우주항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산업을 이끌어온 대한민국 대표 기업 중 하나입니다. 그 출발점은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김종희 창업자가 설립한 ‘한국화약’이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김종희 회장의 리더십과 창업 배경, 그리고 한화의 다각화 및 성장 전략을 바탕으로 한화그룹의 기업 역사를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시작된 민간 방산기업의 역사
한화그룹의 기원은 전쟁이라는 절망 속에서 시작됩니다. 1952년,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김종희 창업자는 ‘산업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사명감으로 한국 최초의 민간 화약 회사, ‘한국화약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당시 국내에는 화약 제조 기술이 전무했고, 대부분의 군용 폭약과 산업용 화약은 외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김 회장은 일본 유학과 실무 경험을 통해 기초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기업가였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국가 재건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산업 기반’이라는 점을 꿰뚫어 봤습니다. 특히 광산 개발, 토목공사, 철도 보수, 산림 복구 등에 필요한 산업용 폭약과 군수용 화약의 국산화는 필수적 과제로 인식했습니다. 한국화약은 설립 초기부터 고된 여건 속에서도 생산 설비를 구축했고, 일본에서 기술과 설비를 도입해 국산 폭약을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그 성과는 전후 복구 현장에서 곧바로 빛을 발합니다. 한화는 광산, 댐 건설, 도로 개발 등 대형 프로젝트에 안정적으로 화약을 공급하며 한국 경제 기초 인프라의 재건을 가능케 한 ‘보이지 않는 주역’이 됩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민간 자본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한 첫 기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전후 불안정한 경제 구조와 정치 환경 속에서, 민간 기업이 스스로 총과 탄약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시대를 앞선 용기였습니다. 김종희 회장의 ‘산업보국’ 철학은 이 시점에서 뿌리를 내립니다.
리스크를 기회로 바꾼 선제적 다각화의 정석
1960~80년대는 한화의 다각화 전략이 본격화되는 시기였습니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고도성장기로 접어들면서, 김종희 회장은 기업의 장기 생존을 위해 ‘한 산업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첫 대상이 바로 화학 산업이었습니다. 한국화약은 기존의 방산 화약에서 생활 산업용 기초화학 제품으로 범위를 넓히며, 플라스틱, 비료, 염화비닐 등의 제조를 시작합니다. 이 사업은 훗날 ‘한화케미칼’, 현재의 한화솔루션으로 이어지며 그룹의 핵심 축으로 성장합니다. 다음으로는 금융업 진출이 이루어졌습니다. 1967년에는 한일생명을 인수하며 보험업에 진입하고, 이후 한화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하여 국내 생명보험 시장에서 꾸준히 점유율을 확대해 나갑니다. 1982년에는 한화증권(현 한화투자증권)을 설립하며 자본시장까지 포괄하는 금융 네트워크를 갖추게 됩니다. 김종희 회장은 에너지가 미래 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확신 하에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합니다. 2010년 독일의 큐셀(Q-Cells)을 인수한 것은 한국 기업 최초의 글로벌 태양광 M&A 사례로, 그 결과 한화솔루션은 오늘날 세계 3대 태양광 셀/모듈 제조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오션 등을 통해 항공, 우주, 방산, 조선 등 국가 기간 산업으로 영역을 넓혀, 글로벌 국방·에너지 복합기업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이는 김종희 회장의 다각화 철학과 기술 기반 경영이 한화 DNA로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산업보국, 인재중심, 기술독립… 3대 가치의 실현자
김종희 회장의 리더십은 단호하면서도 인간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바로 ‘산업보국(産業報國)’의 정신입니다. 특히 기술 독립에 대한 집념은 그 어떤 기업가보다 강했습니다. 그는 외국 기술의 수입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 기술 연구소를 세우고, R&D에 공격적으로 투자했습니다. 또한 일본과 독일 등지에서 유학한 인재들을 채용해 내부 기술력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국산화 체계를 갖췄습니다. 그는 또 인재 중심 경영자였습니다. 김 회장은 “회사가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 사람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직원들에게는 가족 같은 복지를 제공하고, 개인 역량 향상을 위한 사내교육, 장학금 제도, 해외연수 등을 시행했습니다. 그의 인간 중심 경영은 지금의 한화그룹 기업문화인 ‘신뢰 기반 상생’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1981년 갑작스러운 별세로 김 회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철학은 여전히 한화의 경영 핵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ESG 경영, 국방·에너지 등 전략 산업 중심 투자, 국내 인재 중심의 장기경영 등은 모두 그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화의 창업과 성장사는 단순한 기업 연대기가 아니라, 전후 한국 산업의 기적을 실현한 생생한 기록입니다. 김종희 회장은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안목과 흔들리지 않는 철학, 그리고 국가를 먼저 생각한 책임감 있는 기업인이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는 시대에, 한화의 창업 정신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가치를 줍니다. ‘기술, 사람, 국가’를 경영의 중심에 둔 이 위대한 기업가의 이야기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