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항공, 해운, 택배, 정보통신 등 다양한 물류 사업을 아우르는 국내 대표 운송 기업입니다. 하늘과 바다, 도로를 모두 연결하며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 그룹은 대한민국 수송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물류 시스템의 시작은, 트럭 한 대였습니다. 전후 혼란기였던 1945년, 조중훈이라는 청년은 단 한 대의 화물차로 한국 운송 산업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중훈 회장의 창업 여정과 한진의 성장 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근간이 된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트럭 한 대에서 시작된 한진상사
광복 직후였던 1945년, 조중훈은 일본에서 귀국한 뒤 부산에서 ‘한진상사’를 설립합니다. 당시 그는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었고, 사업 자산은 고작 트럭 한 대뿐이었습니다. 도로 사정도 열악했고 연료도 부족한 시기였지만, 물자를 나를 운송 수단에 대한 수요는 높았습니다.
처음에는 짐을 싣고 사람을 태우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운전하고, 고장이 나면 스스로 차량을 고쳤습니다. 조중훈의 성실함은 곧 신뢰로 이어졌고, 물류 수요가 늘면서 사업도 점차 커지기 시작합니다. 주한미군과의 군수 물자 수송 계약을 따내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운송업에 진입합니다. 이는 민간 운송 업체가 국가 기반 물류에 참여한 첫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대한항공공사 인수, 하늘길을 열다
1960년대 중반, 정부는 적자에 허덕이던 국영 항공사 ‘대한항공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항공 산업은 대기업조차 선뜻 뛰어들기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중훈은 “운송은 땅에서 하늘로 이어져야 한다”며 과감하게 인수를 추진했고, 1969년 한진은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게 됩니다.
인수 이후 그는 항공기 확보, 국제 노선 개척, 조종사와 정비사 양성에 집중했습니다. 뉴욕, 파리, 도쿄 등 장거리 노선을 열면서 대한항공은 한국을 세계에 연결하는 대표 항공사로 성장합니다. 당시만 해도 비행기 운항은 국가 주도의 일이었고, 민간 기업이 이처럼 빠르게 세계 항공 시장에 진입한 사례는 흔치 않았습니다.
해운과 지상 물류까지, 종합 수송 기업으로
한진은 항공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해운업에 진출하며 한진해운을 설립했고, 이후 육상 운송을 위한 한진택배, 창고 관리와 시스템 연동을 위한 한진정보통신 등을 연이어 출범시킵니다.
이 시기에 한진은 ‘종합 수송 그룹’으로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항공화물과 해상물류, 육상 배송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인천국제공항, 부산항 등 주요 거점에 물류 기지를 확보해 글로벌 운송을 뒷받침합니다. 조중훈 회장은 직접 현장을 찾고, 창고 설계와 차량 운행 스케줄까지 챙기며, 효율을 높이는 시스템 구축에 집중합니다.
세대교체와 변화의 시기
2002년 조중훈 회장이 별세한 이후, 장남 조양호가 그룹을 승계합니다. 그는 스카이팀 가입, 장거리 노선 확대, 프리미엄 기내 서비스 강화 등 대한항공의 브랜드 이미지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립니다. 하지만 2010년대에는 한진해운 파산, 내부 지배구조 갈등, 가족 간 경영권 분쟁 등 위기도 이어졌습니다.
2020년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고, 조원태 회장이 그룹을 맡으면서 새로운 전략이 전개됩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추진, 물류 중심 사업 재편, ESG 경영 도입 등이 지금의 핵심 방향입니다. 조중훈의 창업 철학을 잇되, 지금에 맞는 형태로 그룹을 정비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
한진의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전쟁 직후, 나라 안에서 사람과 물건을 옮기는 것 자체가 생존이던 시절. 조중훈은 그 틈에서 기회를 보았고, ‘운송이 있어야 경제가 있다’는 철학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한진그룹은 세계 각국을 연결하는 항공 노선과 물류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창업자가 남긴 단 하나의 원칙,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지금도 이 기업의 모든 흐름에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