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에서 시작해 유통, 관광, 화학, 금융까지 한국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롯데그룹은 단순한 대기업을 넘어 한국 경제 발전과 소비 문화 형성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입니다. 그러나 그 거대한 그룹의 시작은 1940년대 일본에서 조그만 껌 공장을 운영한 한 청년의 도전에서 출발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창업자 신격호의 생애와 철학, 롯데의 양국 성장 구조, 주요 사업 전개, 그리고 현재의 글로벌 전략까지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작은 공장, 롯데의 태동
롯데의 창업자 신격호는 1921년 울산에서 태어나 1941년 스무 살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도쿄 와세다대에서 화학을 공부하며 일본에서 기업가로 성공하겠다는 뜻을 품고, 폐전(廢戰) 직후 혼란기에 작은 공장을 세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공장이 바로 훗날 ‘롯데’가 되는 씨앗입니다. 1948년 그는 ‘롯데(Lotte)’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이름은 독일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주인공의 연인 ‘샤를로테(Charlotte)’에서 따왔으며, 창업자인 신격호가 문학적 감성과 인간 중심 경영 철학을 담아 직접 지은 이름입니다. 당시 그는 껌과 초콜릿을 중심으로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식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고품질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며 시장을 장악한 롯데는 곧 일본 전역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성장했고, 이후 롯데제과, 롯데리아, 롯데아이스 등 식품 계열사를 중심으로 일본 내에서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신 회장은 일본에서 이룬 성공을 바탕으로, "이제 조국에 보답할 때"라며 한국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한국 롯데의 탄생과 다각화의 역사
1967년 신격호는 ‘롯데제과’를 한국에 설립하면서 국내 사업을 본격화합니다. 초기에는 껌, 비스킷, 초콜릿 등 간식류 위주였으나, 빠르게 국민 간식 브랜드로 자리잡으며 롯데는 식품업계 강자로 성장합니다. 이후 롯데칠성, 롯데푸드, 롯데주류 등으로 식음료 계열을 확장, 수많은 베스트셀러 제품을 배출하며 국민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혀갔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호텔롯데(1973년 설립)를 중심으로 관광 산업에 진출합니다. 서울 소공동의 롯데호텔은 한국 최초의 글로벌 호텔 체인을 지향하며 관광 허브로 발전했고, 동시에 외국인 대상 면세 사업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이어 롯데월드, 롯데쇼핑(백화점), 롯데마트, 에비뉴엘, 롯데시네마까지 다양한 유통 브랜드를 전개하며 대한민국 소비문화 중심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롯데건설, 롯데물산, 롯데자산개발을 통해 부동산 개발과 대형 복합쇼핑몰 구축에도 진출했으며,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그 상징이자 한국 최고층 건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외에도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알미늄 등의 화학 계열사, 그리고 롯데카드, 롯데캐피탈, 롯데손해보험 등의 금융 계열사까지 출범시키며, 롯데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5대 대기업 그룹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한·일 이중구조, 경영권 분쟁, 새로운 전환기
롯데의 특징은 ‘한·일 이중구조’입니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 롯데지주에 지배적 지분을 갖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신격호 회장의 일본 계열사 중심의 지배 체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양국에서 동시에 대기업으로 성장한 롯데만의 특이한 기업 형태이자, 훗날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에는 신 회장의 장남 신동주(SDJ)와 차남 신동빈(SHL) 간에 지배권을 두고 치열한 다툼(‘형제의 난’)이 벌어졌고, 검찰 수사와 사회적 논란까지 확산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동빈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지를 받아 그룹 전체의 총괄 회장직을 맡으며 내부 안정화에 성공합니다. 이후 신동빈 회장은 ‘뉴롯데 비전’을 선언, 1) 글로벌 확장, 2) 디지털 전환, 3) ESG 경영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제2의 도약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롯데케미칼 중심의 수소 경제 진출, 스마트 물류 시스템 도입, AI 기반 유통 채널 강화 등을 통해 미래 지향적 산업 포트폴리오를 확장 중입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면세·백화점 중심 유통 사업의 수익성 저하에 대응해, 이커머스(롯데ON), 모바일 플랫폼, 친환경 소비 트렌드 대응 브랜드를 론칭하고, 내부 조직도 젊은 경영진 중심으로 개편 중입니다. 전통과 변화를 동시에 아우르려는 롯데 특유의 ‘중도적 변화’ 전략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롯데는 1948년 일본에서 문학적 감성으로 지은 이름 하나에서 출발해, 오늘날 대한민국 산업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신격호 창업자의 통찰과 끈기, 신동빈 회장의 전략적 글로벌 비전이 맞물리며 반세기 넘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롯데는 단순한 소비 브랜드를 넘어, 유통과 문화, 산업과 미래를 잇는 복합 그룹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 한·일 산업사,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기업입니다.